달콤한 휴일
츠키히나 합작 글
w. 달향기
정신이 비몽사몽 한 상태로 습관처럼 핸드폰부터 찾았다. 여기 어디쯤 있을 텐데. 어제저녁 자기 전에 분명히 베개 근처에 두고 잤던 기억을 되감으며 손을 더듬더듬 움직여 보지만 잡히는 건 없었다. 3시간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일만 한지 어느덧 한 달. 무거운 머리는 아직 좀 더 자야 한다고 주장을 펼치고 있었지만, 일단 시간을 확인해야 얼마나 더 잘 수 있는지 결정할 수 있다.
한참을 여기저기 휘적거리고 나서야 간신히 손가락 끝에 딱딱한 물체가 걸렸다. 10분만, 아니 딱 5분만 더 잘 수 있으면 좋겠다. 뿌옇게 번지는 시야에 있는 대로 인상을 쓰고 초점을 맞추니 핸드폰 액정에 오전 10시 45분에서 이제 막 46분으로 숫자가 변하는 것이 보였다. 음. 그래 9시까지 모이기로 했는데 지금 10시가 넘었구나. 오전 10시가 넘었네. 모이는 시간은 9시인데 말이지.
“지각이다!!”
어떻게든 현실을 부정하려 했지만, 망치로 얻어맞은 듯 화들짝 놀란 마음에 끈질기게 따라붙던 잠도 사라졌다. 일단 세수를. 아니 옷부터. 샤워는? 그보다 빨리 나가는 것부터 해야 하는데. 매니저 형은 왜 안 깨운 거야. 평상시 벗고 자는 습관 탓에 알몸으로 방안을 뛰어다니며 대충 보이는 옷에다 몸을 욱여넣었다. 허벅지까지 끌어올린 바지가 내려가지 않게 어기적어기적 걸으며 티셔츠를 집었다.
급한 마음에 한쪽 팔만 겨우 들어간 티셔츠에 다짜고짜 머리를 집어넣다 입에 물고 있던 핸드폰을 떨어트렸다. 진짜 되는 일 없네. 일단 차에 타자. 차에 타서 출발한 후에 옷을 입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급하게 나오다 문턱에 찧은 새끼발가락이 너무 아파 눈물이 핑 돌았지만, 아파할 시간도 없다. 절뚝거리며 현관문을 잡고 벌컥 열고 뛰쳐나가려는데.
“우왓!”
“조심.”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던 바지가 내려가면서 다리가 꼬였다. 문을 열자마자 복도에 나뒹굴겠구나 싶어 허우적거리던 몸이 단단한 팔뚝 위로 떨어졌다. 그 탓에 팔에 가슴이 세게 부딪쳐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다.
“촬영도 끝난 애가 왜 벌써 일어났어.”
“크윽- 츠, 키시마?”
피곤함에 머리는 무겁고, 바지에 쓸린 다리는 아프고 눈앞이 핑핑 돈다. 무뚝뚝하게 떨어지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후드를 뒤집어쓴 츠키시마의 얼굴이 보였다.
“아니 9시까지 모여야 하는데 지금 10시가 넘었는데, 늦어서. 매니저 형이 안 깨워서.”
제대로 된 말로 상황을 설명하고 싶은데 피곤함에 절은 혀가 딱딱하게 굳어 문장 하나를 완성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저께 촬영 끝났잖아. 들어가자. 좀 더 쉬어도 돼.”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를 번쩍 들어 안은 츠키시마가 문을 열며 내가 잠시 잊은 사실을 알려주었다. 6개월 넘게 걸렸던 영화 촬영이 그저께부로 끝이 났다는 사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겨우 씻고 머리도 못 말린 상태로 자고, 자고 또 자는 동안 촬영이 끝났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린 모양이다.
“나 지각 아니야?”
“아니야.”
“그럼 좀 더 자도 돼?”
“계속 자도 돼. 그전에 뭐 좀 먹자.”
떨어지지 않게 츠키시마 목을 끌어안고 익숙한 체온에 기대 실컷 어리광을 피웠다. 촬영이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나서야 츠키시마 손에 들린 마트 봉지가 보였다. 한쪽 팔로 마트 봉지를 들고 다른 팔로 거뜬히 나를 안고 들어온 츠키시마가 소파 앞에서 봉지를 내려놨다. 그러고는 밥하는 동안 좀 더 자고 있으라며 갓난아기 눕히듯이 내 뒤통수랑 엉덩이를 받히고 소파 위로 허리를 숙였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떨어지고 싶지 않아. 난 아직 츠키시마가 부족한걸. 발로 허리를 감싸고 목을 더 꼭 끌어안으며 츠키시마한테서 안 떨어지려고 버텼다.
“피곤하잖아. 밥하는 동안 좀 더 자고 있어.”
“싫어. 같이 자.”
“안 돼. 너 어제도 한 끼도 안 먹고 잠만 잤잖아.”
말투는 차갑게 딱 잘라내면서 머리를 쓰다듬는 손은 다정하기만 했다. 딱 붙어 버티기에 들어가니 결국 소파에 앉은 츠키시마가 내가 편하게 안길 수 있게 자세를 고쳐 앉았다. 한결 편안해진 자세에 기분 좋게 웃었더니 뭐가 웃기냐며 콧등을 때린다.
“옷 꼴이 이게 뭐야. 이러고 나갈 생각이었어?”
말로는 타박하면서 엉망으로 몸을 구겨 넣었던 옷들을 다시 제대로 입혀준다. 안긴 자세에서 옷을 입는 게 많이 불편했지만, 츠키시마도 나도 서로에게서 떨어지고 싶진 않았다.
“내가 현장에서 제일 막낸데 늦었을까 봐. 시간 확인하고 얼마나 다급했는데!”
“경력은 이미 중견 배우면서 막내는 무슨.”
“내가 얼마나 사랑받는 막내인 줄 알아??”
“네네. 모두가 사랑하는 배우 히나타 쇼요님. 이제 밥 좀 먹지?”
기어 다니던 시절 기저귀 광고 모델을 시작으로 내 나이만큼 연예계 생활을 했지만, 아직도 나에게 촬영현장은 조심스럽고 어려운 장소였다. 특히나 이번에 맡은 역은 연기 인생 처음으로 맡아본 역이었고, 잘하면 그동안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아역 이미지를 떨칠 기회였다. 감정소모도 컸지만, 몸 쓰는 장면이 많아 촬영 내내 뛰고 구르고 맞고 날아다녔더니 처음으로 체력의 한계라는 것도 느껴봤다.
목에 감긴 손을 떼어낸 츠키시마가 손등에 시퍼렇게 변해가는 멍을 집중해서 바라봤다. 속상해하는 얼굴을 보면 나도 덩달아 속상해졌지만, 한편으로는 걱정하는 마음이 피부로 와 닿아 좋기도 했다. 이상하지. 네가 나 때문에 속상해하면 어쩐지 기분이 좋단 말이야. 가만가만 손등을 매만지던 츠키시마가 가볍게 입술을 붙였다 뗐다.
“그렇게 안 아파.”
워낙 험하게 움직여야 하는 역할인지라 멍이 드는 걸 피할 순 없었다. 멍이 하나 생길 때마다 속상한 표정으로 노려보는 츠키시마 때문에 안 아프다는 소리가 반사작용으로 튀어나왔다.
“그래.”
목소리는 무덤덤하게 대꾸하고 있지만, 얼굴은 전혀 아니다. 치사하게 내가 이 표정에 약해진다는 걸 알고서 이러는 거다. 가만히 멍든 손등만 바라보는 츠키시마 표정에 뱃속이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내가 졌다. 밥 먹자. 배가 고프네요. 밥부터 먹읍시다.”
좀 더 붙어 있고 싶었지만, 먼저 백기를 든 건 이번에도 나였다. 항복표시를 하며 순순히 일어서는 날 보며 살짝 미소 지은 츠키시마가 가볍게 볼에 입을 맞추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이런 낯간지러운 스킨십 내가 해주는 건 질색하면서 정작 본인은 시도 때도 없이 한단 말이지. 입술이 닿은 볼이 간지러워 손바닥으로 몇 번이고 문질렀다.
오랜만에 츠키시마가 제대로 실력 발휘한 밥상은 쳐다보는 것조차 눈부셔 똑바로 볼 수 없었다. 분명히 요리는 취미라고 했는데 이 정도면 본업으로 삼아야 하는 거 아닐까. 화려하기만 한 내 식사와 달리 정작 츠키시마는 커피 한 잔만 우아하게 마시고 있었다.
“넌 왜 안 먹어?”
“누구누구 씨가 안 일어나서 먼저 먹었지.”
“그래도 같이 먹자.”
지난 6개월간 나만 바쁜 건 아니었다. 냈다 하면 베스트셀러인 초인기 작가 츠키시마 선생님 역시 내가 촬영하는 동안 신간 작업으로 정신없어 마지막으로 같이 식사한 게 4개월 전이었다. 침대에서도 혼자 일어났는데 밥까지 혼자 먹으려니 괜히 울적한 기분이 들어 입만 삐죽였더니 눈치가 여우 같은 츠키시마가 자기 그릇을 챙겨왔다.
“이거 진짜 맛있다.”
그 별거 아닌 행동에 금세 기분이 좋아진 내가 씩씩하게 밥을 뜨니 자연스럽게 츠키시마가 반찬을 올려준다. 츠키시마가 떠주는 음식을 받아먹으며 나는 츠키시마 입으로 부지런히 음식을 날랐다. 각자 자기 밥을 먹으면 편할 텐데,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좀 더 상대방에게 맛있는 걸 먹이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 이건 아마 츠키시마도 같은 마음이겠지. 조금 불편하지만 자연스러운 우리만의 방식으로 식사를 마친 후, 이번에야말로 츠키시마를 껴안고 소파 위에서 뒹굴었다.
“츠키시마.”
“어.”
딱히 하고 싶은 말은 없었다. 그냥 그동안 부족했던 츠키시마를 충전하고 싶어서 츠키시마 심장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이름만 부르고 또 불렀다. 천천히 느리게 뛰는 소리는 나까지 마음이 편해졌고, 내가 부를 때마다 꼬박꼬박 대답해줄 때 느껴지는 진동도 기분이 좋았다. 배부르게 밥도 먹고 츠키시마 위에 누워 토닥토닥 등을 쓸어주는 손길에 몸을 맡기니 잠시 미뤄뒀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츠키시마 나 졸려.”
자고 싶은 마음 반, 지금을 더 즐기고 싶은 마음 반. 어쩔 줄 몰라 그냥 츠키시마만 불렀더니 포개진 몸을 살짝 기울여 옆으로 누운 자세로 바꾸고는 팔베개를 해준다. 이건 그냥 편히 자라는 소리겠지? 꼼지락거리며 좀 더 위로 올라가 츠키시마 목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촬영한다고 수고했어.”
“너도. 마감한다고 수고했어.”
이마에 가볍게 닿았다 떨어지는 입술을 느끼며 점점 멀어지는 의식의 끈을 놓았다. 오랜만에 즐기는 달콤한 휴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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