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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시히나] 동거일기-와인

생귤시루 2017. 7. 14. 00:33

 

 

우시지마 와카토시 x 히나타 쇼요

 

 

 

 

동거일기-와인

w. 달향기

 

 

 

 

우시지마는 전혀 술을 즐기지 않았다. 일 때문에 마시고 들어오는 날이 잦았지만, 집에서는 한 번도 술을 입에 대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동거를 시작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기간에 히나타가 반주를 권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매우 드물게 딱 잘라 거절당한 기억은 뇌리에 선명하게 박혔고, 자연스럽게 히나타는 우시지마에게 술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직업 특성상 선물로 들어오는 술도 많았지만, 그건 전부 집 안에 화분처럼 장식되어 있을 뿐이다.

 

반면에 히나타는 굉장히 술을 좋아하고 즐기는 편이었다. 귀여운 외모 탓에 주변에서는 다들 히나타가 술은 냄새도 못 맡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술자리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정신차리고 있는 건 늘 히나타였다. 취해서 정신 못 차리는 일행을 챙기고 집에 돌려보내는 건 언제나 히나타 몫이었다. 그런 탓에 술자리 약속이 잡히면 날짜를 넘기고 집에 들어오는 일이 잦았고, 그런 히나타를 우시지마는 늘 기다려줬다.

 

"어? 아직도 안 잤어요?"

 

12시 넘어 들어갈 것 같으니 먼저 자라고 메일을 보내놨었다. 안 자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막상 기다린 모습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 날 일찍 출근해야 하는 사람 기다리게 하기 싫어 어떻게든 술 약속을 피해봤지만, 그러기엔 히나타는 인기가 너무 많았다. 이 약속을 피하면 저 약속이 생기고, 약속 하나를 잡으면 왜 우리는 안 만나주냐며 서너개가 꼬리처럼 따라 생겼다. 워낙 사람을 좋아하고 떠들썩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탓에 하나하나 거절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피곤할 텐데. 일찍 자지."

 

미안한 마음은 괜한 투정으로 변질됐다. 보고있던 서류를 내려놓은 우시지마가 히나타가 꾸물거리고 있는 현관으로 걸어왔다. 얼마 마시지도 않았던 술이 지금 올라오는지 그저 걸어오는 걸 바라 볼 뿐인데 얼굴로 열이 오른다.

 

"취한 건가."

 

히나타의 주종목은 맥주다. 브랜드 상관없이 맥주라면 계속해서 마실 수 있었다. 그리고 못 먹는 술은 과일주. 그 중에서도 와인은 히나타가 취하고 싶을 때 마시는 술이었다. 오늘 모임은 동아리 선배들과 OB 선배들을 만나는 자리였다. 시작은 분명 맥주였으나 중간부터는 OB 선배가 가져온 와인으로 주종이 변경됐다. 거절할 분위기도 아니었고, 그렇게 한 잔 두 잔 마시다 중간에 깜빡 졸기도 했다.

 

"그건 아닌데. 왜 안 자고 있었어요. 사람 미안하게."

"내가 기다리고 싶어서 기다린 거다.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된다."

"내일 일찍 출근해야 하잖아."

"이정도로는 피곤하지 않다."

 

현관에 앉아 신발을 벗는데 손이 자꾸 헛돌았다. 그런 히나타 뒤에서 몸을 숙인 우시지마가 직접 신발을 벗겨 주었고, 그 손을 바라보며 히나타는 괜한 투정을 던졌다. 그래. 이건 괜한 투정이었다. 항상 몸을 단련하고 있는 우시지마의 체력은 히나타조차 버거울 정도였고, 취침 시간이 조금 늦춰졌다고 다음 날 피곤해 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꾸만 튀어나오는 투정을 막을 수가 없었다.

 

평소답지 않게 칭얼거리는 히나타가 이상하지도 않은지 우시지마는 별 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저 히나타 신발을 벗겨주고 일으켜 세워주고, 제대로 못 걷는 것 같아 자연스럽게 들쳐안아 옮겨줄 뿐이다. 다정한 손길 하나하나를 익숙하게 받으며 소파에 앉은 히나타가 깊게 숨을 내쉬며 목 주변 옷을 잡아 당겼다. 갑갑해.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있는데도 목 주변이 갑갑해 숨 쉬는 게 불편하다.

 

"일단 옷부터 벗도록 하지."

"푸흐-"

 

답답함에 짜증나기 직전. 우시지마가 편한 옷을 들고 거실로 나왔다. 목이 다 늘어나도록 잡아 뜯고 있는 손을 감싸쥐고 능숙하게 티셔츠를 벗기니 히나타가 잔뜩 풀어진 얼굴로 웃었다. 왜 웃지. 웃겨서요. 실없는 대화를 나누며 잠옷을 입히려는데 도통 협조를 안 해준다. 팔을 제 허리에 딱 붙이고 우시지마 손을 피해 좌우로 몸을 움직이며 장난치는 히나타 얼굴에 재밌다는 표정이 가득했다.

 

평소에도 밝은 아이였지만, 술에 취하니 개구쟁이가 됐는지 안 하던 장난을 친다. 맑게 웃으며 버둥거리는 모습이 재밌어 보여 우시지마도 묵묵히 히나타 장난에 장단을 맞춰줬다. 동거를 시작하고 많이 가까워졌다고 느꼈는데 지금 히나타를 보니 그것도 아니었나보다. 가볍게 스쳐지나가는 맨살이 말랑하고 부드러워 우시지마 얼굴도 점점 풀어지고 있었다.

 

"이제 그만. 그러다 감기 걸린다. 옷은 입는 게 좋다."

 

술에 열이 올라 뜨근했던 몸이 조금이나마 차게 식은 게 느껴졌다. 다른 부분에서는 물렁하게 굴어도 건강 문제만큼은 타협을 모르는 우시지마가 단호한 얼굴로 잠옷을 내밀었다. 또 저렇게 딱딱한 얼굴. 저한테는 한없이 풀어진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우시지마는 표정이 적고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평소에는 그 부분에 마음 쓰인 적이 없었는데 술이 오르니 당연한 것에도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들어 히나타 표정이 울상이 됐다. 감정 표현에 솔직한 히나타는 잘 웃었고, 그만큼 울기도 잘 울었지만 우시지마는 매번 히나타가 울 때마다 어쩔 줄을 몰랐다.

 

"쇼요."

 

울컥한 얼굴이 울음을 참느라 찌글찌글해졌고, 우시지마는 드물게 매우 당황한 얼굴로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어디 아픈 건가. 집이 추운 걸까. 속상한 일이 있어 술을 마셨나. 머리는 복잡하게 돌아가며 히나타 기분이 나빠진 이유를 필사적으로 찾고 있었지만, 답을 알 수 없었다. 한참을 얼굴을 구기며 울음을 참던 히나타가 투정부리듯이 손을 뻗었고, 우시지마는 당연하게 그 품으로 들어가 꽉 껴안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평소 저와 같이 운동을 즐기는 몸은 작지만 단단했고, 묘하게 말랑했다. 손 안에 착 감기는 말랑한 감촉을 느낄 새도 없이 목에 매달려 드물게 어리광피우는 히나타를 토닥이며 기분이 풀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손 안에 들어오고도 남는 작은 머리를 쓰다듬고 저보다 한참은 작은 등을 토닥이며 맨몸으로 춥진 않을까 걱정되어 답답하지 않을 만큼 꼭 끌어안고 있었다.

 

목에 더운 입김이 닿아 체온이 조금 올라갔다. 한참을 품 안에서 소리없이 투정부러던 히나타가 기분이 좀 나아졌는지 작게 웅얼거리며 목소리를 냈다. 목에 닿은 입술의 움직임이 느껴졌으나 소리가 막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고, 우시지마는 인내심을 갖고 뒷 말을 기다렸다.

 

"쇼요. 잘 들리지 않는다."

"...마요."

"응?"

"나한테 딱딱한 표정 짓지 마요."

 

조금 틈을 벌려 말을 듣고 싶은데 얼굴을 보이기 싫은건지 떼어내려는 손길에 도리질 치며 품으로 파고들기만 했다. 그런 히나타를 무리해서 떼어내지 않고 목소리를 낮춰 귓가에 속삭이며 달래니 품에 안긴 채 빼꼼 고개만 돌려 얼굴을 반만 보여준다.

 

겨우 드러난 얼굴이 예뻐서 손으로 쓰다듬고 짧게 이마에 입을 맞추니 금세 얼굴 표정이 풀어지는 게 보였다. 무슨 일이냐고, 뭐가 그렇게 속상하냐는 뜻을 담아 조심히 얼굴을 만지니 작게 웅얼거리던 입이 또렷이 형태를 잡아갔다.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마. 나한테 다정하게 대해줘요. 걱정되는 마음에 굳었던 표정이 서운했는지 드물게 투정부리는 목소리에 물기가 어렸다. 저가 그렇게 딱딱한 표정을 지었었나. 히나타의 저조했던 기분의 원인이 저라는 사실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미안하다. 걱정 돼서 그랬어. 감기 걸리면 안 되니까. 얼굴 여기저기에 입을 맞추며 용서를 구하고 애정을 갈구했다. 내가 잘못했으니 화내지 마라. 속상해 하지마.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로 사과하는 우시지마 모습에 되려 저가 더 당황한 히나타가 고개를 저었다. 그냥 투정 한 번 부려봤어요. 장난이었어. 우시지마 품을 벗어난 히나타가 저가 받은 만큼의 키스를 돌려주며 짓궂은 얼굴로 푸흐- 웃어보였다. 그 웃음에 우시지마도 편하게 웃을 수 있었다.

 

너무 그렇게 놀리지 마라. 나는 네 일이면 이성을 유지하기 어려워. 저보다 두 마디는 더 작은 손바닥에 키스하며 우시지마가 애원을 했다. 진득한 애정이 묻어나오는 애원에 히나타가 우시지마 얼굴을 잡고 짧게 입술을 핥았다.

 

"술 취했나 봐요."

"나도 잘못했다."

 

짧게 핥았던 혀를 깨물며 이번엔 우시지마가 히나타 입술을 핥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짧게 오가던 뽀뽀가 금세 키스로 길어졌고, 우시지마는 그대로 히나타를 들어올려 따뜻하고 바닥이 푹신한 침대가 있는 침실로 걸음을 옮겼다.

 

"놀려서 미안하니까 오늘은 내가 좋은 거 해줄게요."

"그런 건 어디서 배웠나."

 

아주 드물게 히나타가 야한 농담을 던졌고, 그게 또 어울리지 않게 귀여워 우시지마가 코 끝을 깨물었다. 전부 저와 함께 배웠다는 걸 알면서도 이런 말을 하는 히나타는 매번 신기하고 놀라웠다. 가볍게 엉덩이를 주무르는 힘에 푸핫- 웃음이 터진 히나타가 등 뒤에 문이 닿는 걸 느끼고 손을 뒤로 돌려 방문을 열었다.

 

안긴 자세 그대로 멱살을 잡고 당기니 우시지마가 성큼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무도 없는 걸 알면서도 발로 방문을 닫고 들어오는 철저함에 웃음이 터졌고, 웃음이 멈췄을 때는 이미 침대 위였다.

 

"그래서 좋은 거는 어떤 걸 할 생각이지."

"그건 비밀."

 

닿은 입술 너머로 서로의 웃음이 오갔고, 곧이어 히나타가 비밀로 했던 좋은 게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