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시지마 와카토시 x 히나타 쇼요
동거일기-감기
w. 달향기
우시와카가 쓰러졌다.
눈앞의 광경에 히나타가 제일 처음 떠올린 생각은 저것이었다. 목이 아플 정도로 큰 키, 다부진 체격, 운동선수 못지않은 체력. 누구보다 강해 보이는 남자가 쓰러지는 모습은 마치 TV 속 영화를 보는 것처럼 비현실적이었다.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한 채 멍하니 바라보던 히나타는 우시지마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을 보고 정신을 차렸다. 당장에 뭐부터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 일단 떨리는 손으로 우시지마의 몸 상태부터 확인했다.
우시지마가 하는 일은 좋은 말로도 안전한 일이라고 할 수 없었다. 비록 그를 지키는 수많은 사람이 있고, 우시지마 자체가 그들보다도 강하다고 하더라도. 히나타에겐 그 어떤 것도 안심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다친 적이 없어 신께 감사드리고 있었는데, 그 감사 모두 취소다.
모두가 벌벌 떨 정도로 강한 사람이 쓰러질 정도라니. 배가 뚫린 걸까. 총이라도 맞았나? 우시지마 몸 상태를 확인하는 손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우, 우시와카씨."
울고 싶지만, 울 수 없었다. 다행히 손에 피가 묻어나는 일은 없었다. 그 사실에 용기를 얻어 몸을 흔들며 이름을 부르니 그제야 우시지마 입에서 앓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같이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 어떡해. 진짜 아픈가 봐. 어떡해. 결국, 터져버린 눈물을 흘리며 어떻게든 우시지마를 옮겨보려 애를 썼지만, 상체를 일으키는 것부터 무리였다.
혼자 이리저리 끙끙대면서 움직여봐도 현관을 벗어나질 못했다. 우시지마와 늘 같이 다니는 남자를 부르고 싶어도 히나타는 그의 번호를 몰랐다. 우시지마가 자신과 같이 일하는 사람들하고 엮이는 것을 싫어해 그들과 인사만 주고받은 과거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얼마나 현관에서 씨름하고 있었을까. 시선이 느껴져 우시지마 얼굴을 쳐다봤더니 늘 또렷하던 눈동자가 잔뜩 흐려진 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에 바보같이 안심된 히나타가 멈추고 싶어도 자꾸만 떨어지는 눈물을 거칠게 닦으며 말을 걸었다. 눈 감지 마. 눈 감지 마요, 무서우니까.
"저리 가. 감기 옮는다."
말로는 밀어내면서 다가온 손은 다정하게 히나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울어서 잔뜩 열이 오른 얼굴로도 확연히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 며칠 전에 작게 기침하는 것 같더니, 사람 같지 않게 강하다던 그도 결국은 사람이었나 보다. 정신 차린 우시지마가 평소와 다르게 힘겨워 보이는 모습으로 벽을 짚으며 일어났다. 어떻게든 제대로 걷고 싶은 모양인데 고열로 머리가 어지러운지 걷다 말고 멈춰 숨을 골랐다. 그 모습에 다시 거칠게 눈물을 닦아낸 히나타가 우시지마 옆구리를 파고들어 어깨동무를 시도했다.
160이 조금 넘는 히나타가 190이 다 되는 우시지마를 어깨동무할 수 있을 리가 없는데도 히나타는 꿋꿋하게 자기 어깨에 우시지마의 팔을 둘렀다. 안 돼. 너까지 감기 옮는다. 단호하게 밀어내는 말. 다정함이 느껴져 더 마음이 아프다.
"난 바보라서 감기 같은 거 안 걸려요."
언제나 밝고 활기차던 목소리가 울음에 잠겨 눅눅했다. 언제나 우시지마를 올려보며 환하게 웃던 히나타의 고개가 축 처져 정수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우시지마는 어떻게든 자기를 옮겨보겠다고 낑낑대는 히나타 행동에 맞춰 움직여주었다.
현관에서 쓰러졌던 일이 꿈이었다는 듯이 방에 들어온 우시지마는 혼자 옷도 갈아입고 샤워까지 끝내는 진기를 보여주었다. 태연한 행동과 변함없는 무표정은 전혀 아픈 사람 같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나 옆에 딱 달라붙어 있는 히나타를 떼어놓는 행동과 미묘하게 붉어진 볼이 그가 지금 환자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서랍장을 모두 뒤져 찾아낸 비상상비약을 건네주니 고맙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손길에 히나타는 다시 또 터지려는 눈물을 꾹 참아야 했다. 곁에서 간호해주겠다는 히나타를 감기 옮는다고 거절한 우시지마가 혼자 침대에 누웠다. 바로 옆에만 안 있으면 괜찮을 거야. 차마 아픈 사람 말을 무시할 순 없어 거실에 앉은 히나타가 방문을 열고 가만히 우시지마가 잠이 드는 걸 기다렸다. 잠시 뒤척이던 우시지마가 금세 고른 숨을 내뱉으며 잠이 들었고, 그 순간을 기다리던 히나타가 물수건을 준비해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찌푸려진 미간과 식은땀을 흘리는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자꾸만 속이 쓰렸다. 평소에는 그렇게 혼자 제일 강한 것처럼 굴더니, 바보같이 감기나 걸리고. 미동도 없이 식은땀만 흘리며 잠이 든 우시지마 얼굴을 물수건으로 조심스레 닦던 히나타가 입을 열었다.
"바보같이 나도 안 걸리는 감기를."
직업이 직업인지라 잠귀가 예민한데 깨지 않는 걸 보니 속이 상한다. 시계 초침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한 방. 누워있는 우시지마와 그를 바라보는 히나타. 땀을 닦기 위해 잡은 손은 깊은 잠에 빠져 움직이지 않았다. 마주 잡아 오지 않는 손을 보던 히나타는 괜히 외롭고 서러워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원래 이렇게 울보가 아니었는데. 이게 다 우시와카씨 때문이야.
"아프기나 하고. 바보같이. 빨리 일어나요."
밤을 지나 깊은 새벽. 고요한 방에 히나타의 숨소리가 작게 울렸다. 깊이 잠든 듯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우시지마가 눈을 떴고, 히나타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제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 구르던 히나타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감기 옮으니 다른 방에서 쉬라는 말도 듣지 않고 옆에 있겠다는 히나타 고집에 져서 억지로 침대에 누워야 했다. 자신이 깨어있으면 히나타가 쉬지도 못하고 걱정만 할 것 같아 태어나 처음으로 자는 척 연기까지 해야 했다.
타고나길 건강체질이었고 이 정도 감기는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씻은 듯이 나을 게 뻔했다. 사실 히나타가 하는 걱정은 쓸데없는 걱정이었지만, 굳이 말해주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걱정하는 그 시선이 좋아 꾀병을 부릴까-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에 우시지마는 실소를 뱉었다.
"단단히 홀렸군."
무표정한 얼굴의 우시지마보다 눈물로 눈가가 발갛게 부은 히나타가 더 환자처럼 보였다. 바닥에 주저앉아 침대에 고개를 묻고 자는 히나타를 가볍게 들어 올린 우시지마가 자신의 체온으로 따뜻해진 자리에 히나타를 눕혔다.
몇 시간 전 히나타를 울렸던 열은, 거의 떨어진 상태. 이 정도 열이라면 히나타에게 감기가 옮을 리 없다고 판단한 우시지마는 종일 만지고 싶었던 볼을 조심스레 쓸었다. 얼굴에 닿는 감촉에 간지러운지 인상을 쓰던 히나타가 익숙한 체온을 찾아 우시지마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 모습에 잠시 긴장했던 우시지마는 편안해지는 숨소리에 천천히 몸에서 힘을 뺐다.
잠시 후, 침실에는 두 사람의 고른 숨소리가 조용히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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