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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HQ 단문

ⅩⅡ [츠키히나] 역키잡

 

 

츠키시마 케이 x 히나타 쇼요

w. 달향기

 

 

 

 

그에 대한 가장 강렬한 기억은 우는 모습이다.


아홉 살에 고아가 돼버린 나를 손가락질하며 불쌍하다고 동정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 혼자만이 온전하게 지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혼자 남겨진 나보다 먼저 가버린 부모님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것이 속상해서, 여기서 내가 울어버리면 티끌만한 관심도 나에게 쏠릴까봐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기만 했다.그런 나에게 그의 눈물은 부모님의 죽음을 슬퍼해도 된다는 신호와도 같았고, 그렇게 우리 둘은 그 누구의 눈도 신경쓰지 않고 온전하게 떠나간 이를 그리며 눈물로 배웅을 했다.




"나왔어."

답답하게 옥죄는 교복 넥타이를 풀며 신발을 벗은 츠키시마는 집 안의 공기가 미묘하게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잠시 숨을 멈췄다. 이 시간이면 환하게 켜진 불과 잘 다녀왔냐고 밝게 웃으며 인사하는 히나타가 보여야 하는데 까맣게 불꺼진 풍경이 낯설었다.

혹시 일이 늦게 끝나는 걸까.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츠키시마는 학교가 끝난 후에도 따로 도서관에 남아 늦게까지 공부를 하다 집에 들어왔다. 직장을 다니는 히나타보다 늦게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아주 가끔 히나타가 더 늦는 날이 있곤 했다. 그럴 때면 늘 늦는다는 메일을 남기는데 혹시나 하고 확인한 메일함에 새 메세지는 없었다.

거실의 불을 켜고 자켓을 벗으며 히나타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희미하게 들리는 벨소리. 피곤해서 먼저 자는 걸까? 히나타 방의 문을 열었더니 깨끗하게 정리된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여전히 끊기지 않는 벨소리에 혹시나 하고 맞으편의 츠키시마 본인의 방문을 열자마자 벨소리가 끊기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안내 멘트가 귓 속으로 흘러들어온다.

"히나타!"

거실에 흘러들어온 빛에 희미하게 방의 풍경이 보였다. 책상, 책장, 침대 그리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히나타.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어떤 생각을 떠올리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을 보였다.

잡아 일으키는 손길에도 축 늘어지는 몸과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열. 하늘에 맹세코 히나타가 아픈 모습은 처음이라 제대로 된 생각을 하기 어려웠다. 감기인가. 아니면 어디 잘못 되기라도 한 건가. 틈틈히 들여다보던 의학 서적들이 하나도 소용이 없었다.

그동안 대체 무슨 공부를 했다는 걸까. 옷이 축축하게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리는 모습에 자꾸만 겁이 난다. 심호흡을을 하고 필사적으로 침착함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우선은 젖은 옷을 벗기고 아무거나 잡히는 걸 입히고 보니 집에서 잠옷 대용으로 입는 티셔츠다.

이 사람이 이렇게 작았었나.
이유 없이 속상한 기분에 눈물이 날 것 같았으나 울면 안 됐다. 울 수 없었다. 히나타가 먼저 울어주지 않는 한, 츠키시마는 울 수 없었다.

어떻게든 업어보려 했지만 정신을 잃은 사람을 혼자 업는 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기를 안듯이 앞으로 조심스레 안은 채 병원가방을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병원가방은 잔병치레가 잦았던 츠키시마때문에 자주 병원을 들락거렸던 히나타가 급할 때 바로 들고 나가려고 만든 가방이었다. 병원용 카드와 약간의 현금, 필요한 의료보험증 등등이 들어있어 병원에 갈 때는 늘 이 가방을 들고 가곤 했다. 지금 츠키시마가 히나타를 안은 자세도 뛰어가는 이 길도 언제나 항상 히나타가 츠키시마를 안고 달려가던 그 자세, 그 길이었다.

그렇게 보호만 받던 사람을 지켜줄 수 있을만큼 빨리 자라서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제 그보다 키도 덩치도 커지고 힘도 쎄져서 지켜줄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제발, 제발."

나를 안고 뛰던 그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품안의 무게가 무겁고 간절해서. 발을 멈추면 금방이라도 놓칠 것만 같아서 심장이 터질 것 같은데 쉴 수가 없었다. 목에 닿는 숨이 끊어질까봐 무서워서 발을 멈출 수가 없었다.




"몸살이시네요."

심각한 병이 아닐 거란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마음은 중심을 못잡고 불안하기만 했다. 의사 입을 통해 괜찮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숨통이 트이는 기분.

링거를 맞는 팔은 아파보였지만 한결 편해 보이는 표정을 보니 다리에 힘이 풀려 서있을 수가 없었다. 침대 옆 간이 의자에 앉아 멍하니 잠든 히나타 얼굴을 쳐다봤다.

사회적인 신분만 학생일 뿐 이미 충분히 어른이라 생각했고 어른이 되었다고 자신만만해 했다. 그를 지켜줄 수 있을 만큼 강해졌다고. 그의 보호가 필요한 어린아이가 아니라 그를 보호해줄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고. 히나타와 눈높이가 같아지고 히나타를 내려다보게 되면서 어른이 되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히나타가 아프고 나서야 스스로가 아직 어린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더 어른이 되어야 한다. 겉모습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속까지 완벽하게 자란 어른이.

그를 지켜줄 수 있는...
그에게 보답할 수 있는...
그리고 그를...

"히나타."

부름에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게 너무 외로워서 그렇게 츠키시마는 주문처럼 히나타를 부르고 또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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